우토로마을(ウトロ)
재일교포의 아픔을 직접 마주하다.
우선 우토로마을에 대해서 들어가보기전에 우토로마을이 어떤 마을인지부터 알고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우토로 마을이 생겨난 계기는 우리의 암울한 역사인 일제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1년. 교토 군비행장 건설을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조신인 노동자 1300여명의 집단 합숙소로 건설된 곳이 지금의 우토로 마을이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게 되자 조선이 광복을 맞으면서 비행장 건설이 중단되었고 이때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본 정부에 의해 방치되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버린 그들은 제각각 흩어졌다. 징용자 중 몇몇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일부는 뱃삯을 구하지 못하거나 돌아갈 고향을 잃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제대로 된 공간이 아닌 그곳에 남아 공터를 닦아 무허가 정착촌을 이루고 살아가게 되면서 우토로 마을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참고 : http://blog.naver.com/sisa0708/50186205899>
자세한 내용은 소개영상을 통해서 살펴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우토로 마을에 저희 응답하라 1945가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나누고, 변화해 왔습니다. 지금부터 저희의 활동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토로마을 소개영상
우선 우토로마을에서의 봉사는 총 8팀으로 응답하라 1945팀, 걸어서 잠금해제팀, 홈런볼팀, 파오코팀, 도원결의팀, H2O팀, 자기야 돌아와팀, 상상라디오팀 이렇게 총원 32명이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봉사를 팀별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팀을 만들어 자신이 자신있는 팀으로 들어가서 활동을 했습니다. 요리팀, 벽화팀, 사랑의 나무팀, 이벤트팀, 단청팀 이렇게 5팀으로 나뉘어 봉사를 진행했습니다.
요리팀은 어르신들에게 전과 차를 준비했습니다. 전을 직접 부쳐서 어르신분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이야기를 함께 나눔으로서 함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통해서 뿌듯함까지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였다고 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사랑의 나무팀은 하루 전날에 적었던 우토로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세지를 나무에 걸어 사랑의 나무를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이 나무를 보고 상상원정대 3기나, 4기 등 후배 기수에서 이 나무를 더욱 발전 시켜 우토로를 대표할 수 있는 나무가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벽화팀은 우토로마을 표지판이 있는 곳에 다양한 희망의 글귀를 적었습니다. 벽화팀의 열정적인 노력끝에 우토로마을의 팻말이 화사하고 아름답고, 희망적인 내용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이런한 내용은 우토로를 더욱 아름답고 희망찬 마을로 탈바꿈 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 | ![]() |
---|---|
![]() | ![]() |
![]() | ![]() |
![]() | ![]() |
![]() |
단청팀은 어른들께 드릴 단청모양의 거울을 제작했습니다. 모양 하나하나부터 직접 디자인하고 직접 제작해 어르신분들께 드렸습니다. 또한 어르신들께서는 직접 참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만들어진 거울을 보시며 기뻐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단청팀분들도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마지막으로 이벤트팀은 영상촬영, 사진촬영, 윷놀이, 말벗되드리기, 포토앨범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서 어르신들이 굉장히 좋아하셨습니다. 특히 윷놀이는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저는 열심히 영상을 촬영하고,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더욱 큰 해상도의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사카에서 온 공연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아주 흥에 겨워서 서로 춤도 추고 함께 재밋게 구경했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추운 날씨에도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저까지 힘이 났습니다. 다시 한 번 공연해준 오사카 공연단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토로 마을을 떠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우리들을 도와준 우리 국민들이 우토로 사람들에게는 조국이다."라는 말이였습니다. 우토로 마을을 떠날때에는 마음속 한 구석 있던 아쉬움과 미안함이 공존했습니다. 아쉬움은 오래 같이 있지 못했던 마음이였고, 미안함은 이제서야 우토로를 알게 되었다는 미안한 마음이였습니다. 우토로를 들어갈 때 보면 보이는 문구가 있습니다. "우토로는 사랑입니다."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토로는 사랑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우토로에 가보고 싶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우토로를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토로마을 그룹 및 관계자분들 너무너무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우토로 대책 회의(http://www.utoro.net/main/main.php) 사이트에 들어가셔서 조금이라도 우토로 마을에 희망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14 by Pride of Korea 응답하라 19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