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텐노지(四天 王寺)
백제양식의 일본 최초, 최고의 불교사찰
오사카시(大阪市) 덴노지구(天王寺区)에 있는 사찰로.
쇼토쿠태자(聖徳太子)가 건립한 7대 사찰 중 한 곳으로 곤고묘시텐노다이고코쿠노데라(金光明四天王大護国寺)라고도 불린다.
593년 창건되었으며, 본존은 구제관음(救世観音)이다. 종파는 천태종에 속해 있었으나 일본 불교의 창시자인 쇼토쿠태자가 건립한 일본 최초의 불교사찰이라는 점에서 종파에 구애받지 않는 와슈소혼잔(和宗総本山), 일본 불교의 총본산으로 1946년 독립했다.
경내의 주요건축물로는 국가지정중요문화재인 도리(鳥居), 로쿠지도(六時堂), 혼보니시쓰요문(本坊西通用門), 혼보유야호조 (坊湯屋方丈), 고치코인(五智光院),
간산다이시도(元三大師堂), 이시부타이(石舞台) 등이 있다.
출처 : 두산 백과 시텐노지 [Shitennō-ji, 四天王寺(사천왕사)]
쇼토쿠태자와 백제문화의 전달.
백제 사람들은 일본의 아스카 지방에 이주하여 아스카라는 절을 세우고 아스카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아스카 시대를 연 핵심 인물은 백제계 이주민의 외손인 쇼토쿠 태자로 쇼토쿠 태자는 백제계 이주민의 협력을 얻어 백제의 기술자와 스님을 모셔다가 아스카 문화라 불 리는 일본 불교문화의 꽃을 피웠으며 일본 문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시텐노지에서 찾아보는 백제의 영향.
시텐노지는 일본의 사찰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찰 양식과는 다른 백제의 불교건축양식과 우리나라 사찰과도 비슷합니다.
시텐노지의 오중탑은 593년에 세워졌으나 1959년에 복원한 것으로 높이 약 39.5m의 탑인데 부여에 있는 백제문화단지의 능사(陵寺) 5층 목탑과 똑같다는 생각이들 정도로 흡사합니다.
‘시텐노지 양식’이라고 불리는 남대문, 중문, 오중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는 양식과 1탑 1금당 양식 또한 백제의 양식입니다. 특히 가람양식은 백제시대 3번째 왕도였던 부여의 군수리 절터와 건축양식이 똑같습니다. 그리고 군수리의 절터처럼 사찰의 중문, 오중탑, 금당을 남북 일직선으로 하여 사방은 회랑을 네모로 두르고 있습니다.
또한 시텐노지에서 우리가 꼭 봐야 하는 곳은 무대강(이시부타이)이라는 넓은 돌무대입니다.
해마다 4월 22일이면 쇼토쿠 태자 위령재를 지낼 때 이 무대에서 쇼토쿠 태자를 위령하는‘성령회 무악 개법요’를 거행하는데 불교춤과 음악으로 이루어진 무악행사, 일본 궁중 의식과 관련된 부가쿠 공연을 하는 곳으로 백제의 무용가인 미마지가 일본인들에게 사자춤과 탈춤을 전수하였습니다. 무대강은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백제의 문화가 일본에 전달된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백제의 양식이 일본 절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당시 왜의 기술만으로는 절을 지을 수가 없었으며 백제에서 건너 온 목공들과 기술자들이 절을 짓는데 동원되었기 때문입니다.
백제의 기술자들 중에서 유중광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금강’이라는 성을 쇼토쿠태자에게 하사 받고 “앞으로 시텐노지의 보수를 맡으라.”는 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생긴 사찰전문 건설회사가 ‘곤고구미’ (곤고=금강)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설회사입니다.
1995년 7.2의 건물 16만채를 무너뜨린 고베 대지진에도 곤고구미가 지은 건물은 큰 손상없이 지진을 견디어내어 일본에 ‘곤고구미가 흔들리면 일본 열도가 흔들린다’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표현들이 지금까지 연결되어 온 것을 보면 일본에 백제 목공과 기술자들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텐노지는 오래된 절답지 않게 웅장한 크기와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텐노지의 모습을 보면서, '백제의 문화도 이처럼 아직까지 남아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위용을 자랑하는 것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문화재들 중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백제의 문화재는 없으니까요.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시텐노지였습니다.
원문 포스팅 : http://z_cerise.blog.me/4020568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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