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쇼지(興聖寺)
사명대사의 흔적을 찾아서.
이곳 고쇼지는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요청을 받아 포로교환을 위해 조선통신사를 이끌었던 사명대사가 머물렀던 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사명대사의 친필 족자 두 점이 남아 있으며, 그 당시 절의 주지스님과 사명대사 사이의 편지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자면, 이 절의 주지스님인 나가토 겐코(長門玄晃) 스님은 이 절의 초대 주지인 엔지(圓耳) 스님이 사실상 사명의 제자였다는 것이다.
엔지 스님은 조선의 큰스님인 사명이 혼포지에 머문 것을 전해 듣고는 사명을 무작정 찾았다. 그는 사명에게 그동안 수행(修行)하면서 해결되지 않던 '선(禪)에 대한 10가지 궁금증'에 대해 답을 듣기를 청했다. 이 절에는 당시 엔지가 쓴 서찰이 보물로 간직돼 있었다. 사명은 엔지 스님의 물음에 끝내 답은 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은 그것이 선에 대한 사명의 답이었다. 그러면서 사명은 "일본에도 공부하는 중이 있구나"라며 그에게 '무염'(無染)이란 법호와 '허응'(虛應)의 자(字)를 주었다. 엔지 스님은 사명이 교토에 머물 때 아침저녁으로 찾아 보살피며 사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고쇼지에서 사명의 친필을 만날 수 있었다. 중국의 경산(經山) 대혜보각선사(大慧普覺禪師)의 전서체를 읽기 쉬운 해서체로 써 달라는 일본승의 부탁을 받고 찬문을 한 글과 오언시 족자 등 4점을 소장하고 있었다-국내에서는 지금까지 5점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과 달랐다. 특히 사명이 제자 엔지 스님에게 써 준 '虛應'이란 글씨는 절에서 유출된 것을 최근 되찾았다고 한다.
사명의 서체는 힘이 넘쳤다. 적진에 있으면서도 기상을 잃지 않은 사명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3개월간 머문 혼포지가 아니라 이곳 고쇼지에 사명의 유품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사제지간으로 맺어진 인연 때문일 것이다. (매일신문의 박용우기자님 글 인용)
원문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0370&yy=2012
사명대사의 친필 족자.
명필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씨에 힘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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